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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공의 재질

'아라미스'라는 브랜드로 전 세계 당구공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벨기에 살뤽에 따르면 정답은 플라스틱의 일종인 페놀수지다. 그 외에 몇몇 물질이 추가되지만 이 회사가 정확한 소재를 특급기밀에 붙이고 있어 주원료가 페놀수지며 23일간 13단계의 공정을 거친다는 것 외에는 지난 40여년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당구계의 코카콜라로 칭하기에 충분한 기밀유지 능력이다.

시장점유율에서 알 수 있듯 살뤽의 당구공은 품질면에서 우위를 인정받고 있다. 완벽한 구형으로 질량 분포가 균일하고 완전탄성체에 가까워야 한다는 당구공의 이상적 조건에 가장 근접한 제품으로 꼽힌다.

특히 내구성은 놀라운 수준이다. 이 회사의 설명으로는 당구공이 깨지는 파손 하중이 무려 5톤에 이른다. 폴리머나 폴리에스터 소재와 비교해 내충격성은 50배, 스크래치 내구성은 2배 강하다는 설명이다. 당구장 주인들이 단골손님에게 게임 중 당구공을 깨면 돈을 준다거나 평생 당구비를 받지 않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때가 있는데 살뤽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큐가 아닌 망치로 내리쳐도 공은 깨지지 않는다.

내열성도 마찬가지다. 캐롬 경기에서 수구는 순간적으로 시속 30㎞ 이상 가속되며 공과 바닥 천 사이에 250℃ 이상의 마찰열이 발생하지만 페놀수지의 치밀한 분자구조 덕분에 당구공은 이를 거뜬히 견뎌낸다. 그렇다면 당구공은 처음부터 플라스틱으로 제작됐을까. 아니다. 초기의 당구공 재료는 코끼리의 상아였다. 200년 가까이 주류를 이뤘던 상아 당구공이 플라스틱으로 대체된 것은 지난 1868년 존 웨슬리 하이엇에 의해서다. 당시 미국의 당구공 제작사 펠란&콜렌더가 치솟는 상아 가격에 못 이겨 새로운 당구공 소재 개발자에게 1만 달러의 상금을 내걸었고 이를 노린 하이엇이 니트로셀룰로오스에 장뇌(樟腦)를 섞어 고분자 셀룰로오스를 개발한 것.

지난 1907년 미국의 화학자 리오 베이클랜드에 의해 개발된 최초의 플라스틱 '베이클라이트'의 원천이 이 셀룰로오스였다. 당구공이 아니었다면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인 플라스틱의 탄생이 훨씬 늦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출처: 서울경제신문 (2010.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