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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신당동 가옥

박정희가 군사반란을 모의했던 신당동 가옥을 서울시가 문화재로 지정 개방
박정희 전 대통령 가족이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살았던 서울 종로구 신당동 62-43번지 가옥 복원 공사가 끝나 일반 공개에 하루 앞서 16일 기자들에게 공개됐다. 마당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씨의 사진이 집을 배경으로 서 있다.

서울시, 17일 개방에 앞서 낸 보도자료서 ‘쿠데타’ 대한 표현 모두 ‘5·16’으로만 표기

서울시가 박정희 전 대통령 가족이 살았던 중구 신당동 집을 일반에 공개하겠다고 밝힌 보도자료에 ‘5·16 군사쿠데타’를 어떻게 표기했을까.

이 가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쿠데타를 모의했던 장소이고 1961년 8월 장충동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공관으로 이주할때까지 가족과 함께 지냈던 곳이다. 문화재청은 이곳에 대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군사정변을 계획하고 지휘한 장소로서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있어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신당동 집은 이런 역사적 의미가 커 지난 2008년 등록문화재 428호로 지정됐다.

16일 서울시 역사문화재과가 신당동 박정희 가옥을 17일 개방하기 앞서 낸 보도자료를 보면, 5·16 군사쿠데타에 대한 표현은 총 5차례 나오지만, 전부 ‘5·16’으로만 표기돼 있다. 보도자료를 보면, “(이곳은) 한국 현대정치사의 중요 전환점이 된 5·16(1961년)이 계획됐다”(1쪽), “5·16 당시 서울시청 앞에 서 있던 박정희 장군을 떠올릴 수 있는 전투복을 전시하고,”(4쪽), “박정희 본인이 5·16의 당위성과 포부를 저술한 <국가와 혁명과 나> 등을 (중략) 전시했다.”(4쪽), “영상실 겸 전시실을 조성해 5·16을 전후로 한 박정희 소장의 활동과”(4쪽), “대한뉴스 상영 목록 제314호 5·16(1961.5.20.) 5분36초”(4쪽)라고 표기돼 있다.

이준식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은 “‘5·16 쿠데타’는 이미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정립돼 있는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글로 표시하지는 않았으나 5·16이 군사 쿠데타라는 것은 당연하다는 전제하에 쓴 보도자료다.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들어 5·16에 대해 교과서적 표현인 ‘군사 쿠데타’나 ‘군사정변’이란 표현은 ‘금기어’처럼 바뀌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열린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는 “5·16을 쿠데타로 보느냐”는 질문에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등의 답을 하며 즉답을 피하곤한다. 출처: 한겨레신문 2015.3.16

일본천황에 대하여 혈서까지 써가며 충성을 맹세하여 일본군이 된 민족의 반역자 박정희가 혼란을 틈타 군사반란을 일으켜 18년간 군사독재를 하다가 부하의 총에 죽었다. 박정희의 신당동 집은 2008년 이명박때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한국의 기득권세력은 민족의 반역자를 변호하거나 박정희처럼 영웅화하여 국민을 바보로 만들어 정권을 연장하려고 한다. 참고(박정희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