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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조선에 세운 신사 1141곳

일제시대 조선인들의 신사참배를 위해 지어진 침략신사는 지금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일제강점기 일본은 천황에 대한 숭배를 조선인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조선에 1141개의 크고 작은 신사를 세웠다. 신사는 도시의 심장부이자 도시 어디서나 우러러볼 수 있는 산중턱에 세워졌는데 이 같은 특성으로 인해 대부분 부지는 현재 공원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서울 남산공원과 부산 용두산공원, 대구 달성공원, 전주 다가공원 등이 모두 일제의 대표 신사가 자리했던 곳이다.

남산공원 자리엔 신사 중에서도 가장 격이 높은 관폐(官幣)대사 등급의 조선신궁이 있었다. 조선에 세워진 관폐대사 신사는 조선신궁과 부여신궁 2개 뿐이었는데 부여신궁이 완공되지 못해 조선신궁은 사실상 조선의 유일한 관폐대사였다. 관폐와 국폐는 국가가 신사 관리 유지 비용을 부담했던 신사로 분류되며 관폐가 국폐보다 격이 높다.

조선신궁 터 일부에선 현재 한양도성 남산 회현자락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서울시는 이 공사를 2015년에 끝마칠 계획이다. 조선신궁 본관 자리엔 남산 중앙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원래 이 자리에 식물원이 있었지만 2006년 철거됐고 인근의 남산도서관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조선신궁과 달리 1939년 충남 부여군 부소산자락에 짓기 시작한 부여신궁은 건설이 끝나기 전 일제 패망으로 완공되지 못했지만 터는 그대로 남았다. 현재 신사 터에는 1956년 국민성금을 모아 지은 삼충사라는 사찰이 세워져 부소산을 지키고 있다.

관폐대사보다 사격(社格) 아래인 국폐(國幣)소사는 경성신사·강원신사(춘천)·대구신사·평양신사·광주신사··함흥신사·전주신사 그리고 용두산신사(부산) 모두 8곳이 있었다. 나머진 이보다 더 아래 등급의 작은 신사들로 전국에 1000여곳이 세워졌다.

전국 주요 거점에 세워진 국폐소사들 대부분은 현재 공원이나 학교, 호텔 등으로 완전히 변신했다. 1913년 서울 중구 예장동에 있던 경성신사는 현재 숭의여자고등학교와 숭의여자대학교가 들어서 있다.

부산 용두산에 우뚝솟은 부산 타워자리는 원래 용두산신사가 있던 자리로 주변터는 공원 등 시민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구를 대표하는 달성공원 역시 대구신사가 들어섰던 곳이다. 해방과 함께 철거된 대구신사 터엔 도서관, 박물관 등이 들어섰다가 1969년 달성공원으로 공식 이름이 붙었다.

광주시민들은 광주신사가 있던 자리에 광주공원을 세워 광주의 대표 쉼터로 만들었다. 광주시립박물관과 현충탑 등이 신사터 위에 그대로 들어서 있다. 전주의 다가공원 역시 일제시대 전주신사로 쓰이던 자리였다. 지금도 다가산 정상에 오르는 길을 참궁로(參宮路)라고 부르는데 눈물로 참배를 가는 길이란 뜻이다.

춘천 봉의산에 세워진 춘천신사(후에 강원신사로 확대)의 1948년 입구 모습(위)과 현재 자리에 세워진 세종호텔춘천의 입구(아래) 계단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 사진제공=춘천역사문화연구회

한편 춘천에 있던 강원신사 자리엔 호텔이 들어서 있다. 다만 신사터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 세종호텔춘천은 입구 등을 여전히 일제시대 지어진 신사의 형태를 리모델링 해서 사용하고 있고, 호텔의 건물배치가 신사가 지어질 당시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일각에선 일제 잔재가 청산되지 못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북한에도 평양과 함흥에 평양신사와 함흥신사 등 국폐소사 급 신사가 2곳 있었다. 하지만 현재 신사터가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는 전문가들조차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제시대 북한에 들어선 신사터도 대부분 해방 직후 철거됐을 것"이라면서도 "정확한 통계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현재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는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해방되자마자 조선인들이 일제 신사를 찾아가 철거에 가담할정도로 대단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며 "현재 대부분 신사가 들어섰던 자리엔 공원이나 사찰,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머니투데이 뉴스(2013.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