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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말 어원사전 - 박병식

“한일(韓日) 역사의 비밀을 캔다” 박병식 가야족(伽倻族)의 작은 집(日本) 1 내가 ‘야마토말 어원사전(語源辭典)’을 펴낸지 다섯달만인 2001년 8월, 일본에서 발행되는 세계일보(世界日報)에 다음 같은 서평(書評)이 실렸다. 기고(寄稿)한 사람은 일본 명문대학으로 손꼽히는 쓰쿠바대학(筑波大學) 명예교수 가도-에이이치(加藤榮一)씨였다.

[‘야마토말 어원사전(語源辭典)’의 평가]‘ 일본어와 한국어는 어원이 같다. 새로운 눈으로 역사를 배우자.’ 서기 2001년은 한일관계사상 획기적인 해가 될 것이다. 박병식씨가 펴낸 ‘일본 어원사전’이 간행됐기 때문이다. 현대 일본어는 많은 한자어와 영어는 같은 외래어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 근본은 ‘야마토’ 말이다.

일본어의 유래

그렇다면‘야마토’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 물음은 “일본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가?”와도 관련되는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질문이다.물론 오늘까지 많은 학자들이 일본말의 어원에 대한 학설을 내 놓았으나 그 대부분이 의심스러운 것이다. 어떤 사람은 ‘히말라야’에서 쓰이는 ‘레프차’말이 어원이라고 하는가 하면, 또 다른 학자는 인도지방에서 통용되는 ‘타밀’말에서 일본말의 어원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승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말들은 일본으로의 민족이동도 없었던 멀리 떨어진 곳의 언어일 뿐 아니라, 그런 학자들이 예로 든 일본어의 대응(對應)은 전혀 규칙성(規則性)이 없고, 아무 원칙없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그런 까닭에 양심적인 학자들 사이에서는 “위험하다. 어원과 여성(女性)에게는 가까이 가지 말라”는 우스개 소리가 오갈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서 바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일본어의 어원을 풀려고 시도한 사람은 무라야마시치로(村山七郞)씨 뿐이다.그는 ‘우랄알타이’제어(諸語)의 계통을 밝히려고 애쓴 ‘알타이스트’였다.

그의 방법이 과학적이였다고 하는 이유는, 그가 인구제어(印歐諸語)사이의 친척관계(親戚關係)를 입증한 방법을 보편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그 방법이란“여러 언어 사이에 있는 공통조어(共通祖語)를 상정(想定)하고, 그것으로부터 소리변화법칙에 따르는 규칙적인 변화를 경유하여 여러가지 언어가 성립됐다”고 보는 이론이다.

그 방법을 써서 어원을 밝히자면 조어(祖語)를 상정하기 위한 상상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소리변화법칙을 발견하기 위하여 많은 조사를 해야 하며 따라서 광범위한 언어의 지식이 필요하다. 무라야마시치로(村山七郞)씨는 '알타이’제어(諸語)와 서구제어(西歐諸語)에 대하여는 광범위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깝게도 한국어에 대해서는, 적어도 그 사투리에 이르기까지의 지식은 갖고 있지 않았다.

일본어나 한국어를 대응시키려면 도쿄지방(東京地方)에서 쓰이는 일본 표준어와 서울에서 쓰이는 한국표준어를 비교하는 것 보다는, 지리적으로 서로 가까운 북규슈(北九州)나 산음지방(山陰地方)에서 쓰이는 사투리와 한국 남부지방에서 쓰이는 사투리를 비교하여야 서로의 근사성(近似性)을 발견하기 쉬울 것이다. 일제의 조선지배는 좋은 것이었다고 할 수 없다.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

그러나 그 시기는 ‘기적(奇蹟)의 세대(世代)’를 배출했다. 즉 한-일 두나라 사투리까지를 아는 박병식씨 같은 세대(世代)를 탄생시킨 것이다. 박병식씨의 오랜 세월에 걸친 연구로 일본어와 한국어는 같은 뿌리에서 탄생됐음이 밝혀졌다.그리고 보면 한일 두 민족은 형제다. 형제가 서로 싸우는 것은 좋지 못하다. 내가 첫머리에서 “한일관계사상(韓日關係史上) 획기적이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신무천황(神武天皇)의 건국 이래 2661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틀림없이 세계에서 제일 오랜 황통(皇統)을 지닌 나라다.그러나 신무천황 이전에는 신대(神代)가 있었고 천황의 조상이 내려왔다는 고천원(高天原)은 한국이었다고 상정(想定)하지 않으면 안된다.

황실의 조상(祖上) 뿐 만 아니라, 천황의 선조와 함께 강림(降臨)했다는 천손민족(天孫民族)은 한국에서 왔다. 따라서 한-일 두민족이 형제라고 할 때 한국을 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아우이며 작은 집인 것이다.그러나 일본은 ‘갈대가 풍성한 성스러운 이삭의 나라(豊葦原瑞穗國)’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넓은 섬나라였던 덕분으로 작은집(分家)이면서 큰집(宗主國)보다 더 번영할 수 있었다.

인구가 늘어나고 재력(財力)도 풍부해진 작은 집 일본은 번번히 큰집(宗主國)을 업신여기고 공격하기도 하고 지배(支配)하는 일까지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 것이 한국사람에게는 못마땅하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많은 일본사람들은 왜 한국사람들이 일본사람들에게 노여움을 품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두 나라 사람들은 역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고쳐봐야 한다. 미국 사람들은 자기들이 영국의 작은 집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영국의 백과사전에는 영어가 독일어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것이 도표(圖表)로 실려있다. 일본사람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러한 낯 간지러울 정도의 과찬(過讚)이 매스컴에 떴으니, 제 아무리 고집스러운 일본 고대 사학계(古代史學界)나 국어학계(國語學界)일지라도 "한일 두 민족은 같은 줄기이며따라서 두 나라 말도 같은 뿌리에서 비롯됐음이 분명하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 몰라라하고 외면한 채 아무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그로부터 만 2년 소리없이 세월만 흘렀다.이제 그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체념할 무렵, 생각지 않았던 낭보(朗報)가 뜻밖에도 일본 인류유전학계(人類遺傳學界)에서 날아들었다. 다음은 2003년6월23일자 교도통신(共同通信)의 보도내용이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유전자분석결과

동경대학의학부(東京大學醫學部) 인류유전학교실(人類遺傳學敎室) 도꾸나가가쓰시(德永勝士)교수는 인간의 6번 염색체 내에 존재하는 ‘HLA유전자군’을 이용한 인간유전자(게놈)을 비교 연구한 결과, 일본본토인과 가장 가까운 집단이 한국인과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도쿠나가’교수는 일본인, 한국인, 중국조선족, 만주족, 몽골족 등 12개 민족(집단)을 비교분석한 결과 일본 본토인은 오키나와인이나 홋카이도(北海道)의 ‘아이누'족보다 한반도에 사는 한국인과 중국의 조선족에 가까웠다고 밞혔다.일본 본토인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HLA유전자형태는 HLA-B52-HLA-DR2로, 북규슈지방(北九州地方)에서 야마가다현(山形縣)에 이르기까지 12%이상 존재했고 몽골인에게는 5~8% 나타났다.

반면 HLA유전자는 오키나와인에게서는 2%,'야이누'족에서는 1%에 그쳤다. 이런 연구결과는 동경대학에서 곧 출간할 예정이다.한편, 돗도리대학(島取大學) 의학부 이노우에다카오(共上貴央) 교수팀은 벼농사 도입과 청동기전래(靑銅器傳來)로 상징되는 ‘야요이’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DNA가 현대 한국인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연구결과를 냈다.돗도리대 연구팀은 ‘야요이’시대 돗도리현 아오야가미(靑谷上) 절터(寺跡)에서 출토된 ‘야요이’인 유골 ‘미토콘드이아(mitochondria)’DNA 염기배열을 분석한 결과 이같은 결론을 얻었다.

돗도리대 연구팀은 ‘야요이’인 유골 29점 가운데 7점으로부터 DNA를 추출하는데 성공한뒤 그 중 4점에서 ‘미토콘드리아’DNA 염기배열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한국의 현대인 및 혼슈(本州)의 일본인과 동일한 그룹에 속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와같은 보도는 오랜 세월동안 일본학자들이 은폐해 온 일본인의 혈통과 어원에 대한 비밀을 더이상 궤변(詭辯)으로 늘어놓을 여지없이 밝혀줬다.

이런 사실은 저들이 늘 들먹이는 ‘고사기’나 ‘일본서기’를 비롯한 그들의 고문서(古文書)들을 선입견(先入見) 없는 눈으로 읽어왔던들 진작부터 알 수 있었던 뻔한 일이었다.

우선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적혀있는 그들의 건국신화부터 들여다 보자“하늘나라로부터 내려온 천손(天孫) ‘니니기노미코도’일행은 가고시마현(鹿兒島縣) 노마반도(野間半島) 끝에 이르러, ‘가사사(笠狹埼) 허구리’ 앞을 바로 지난 데에 있는 이곳은 가라국(加羅國=伽倻國)를 향해 있을 뿐 아니라 아침해가 찬란히 쪼이고 석양빛도 아름답게 비쳐주는 곳이니 매우 좋다고 하며 그곳에 대궐(大闕)을 지어 정착했다.”이 기록은 천손 ‘니니기노미코도’와 그 일행이 부모형제를 남기고 고향 가라(加羅=伽倻)를 그리워하는 심정을 잘표현한 대목이다.더구나 그들은 그들이 정착한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을 가라구니다케(韓國岳)라고 이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영국에서 ‘아메리카’대륙으로 이민온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저들의 출신지 지명을 따서 ‘New England=새 영국’‘New York=새로운 York’라고 이름붙인 것과 꼭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한중일 역사왜곡 청산위원회 (20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