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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일본군 혈서지원 기사

박정희 혈서
사진은 박정희가 경북 문경소학교 교사로 재직중에 일본천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혈서를 써가며 만주군에 지원한 것이 일본인 사이에 화제가 되어 만주신문에 실린 기사내용이다.
- 『滿洲新聞』1939년 3월 31일 7면

血書、軍官志願
혈서, 군관지원
半島の若き訓導から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일본어 설명 1. 일본어로 혈서는 켓쇼(けっしょ:血書)라고 한다. 2. 훈도는 일제시대 초등학교선생을 일컫는 말인 듯 하다. 젊은 훈도라는 표현을 若い訓導라 하지 않고 若き訓導라고 한 것은 문어적인 표현의 한 예이다.

二十九日治安部軍政司徵募課へ朝鮮慶尙北道聞慶西部公立小學校訓導朴正熙君(二三)より熱烈なる軍官志願の手紙が戶籍騰本、履歷書、敎練檢定合格證明書とともに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일본어 설명 1. 군사교육이었던 교련(教練)이라는 수업이 일제의 잔재라는 것이 새삼 놀랍다. 2. 이 것은 1939년 만주신문에 사용된 일본어인데 國、學、讀 등의 한자가 사용되고 있다. 현대 일본어에서는 国、学、読 등 간략해진 한자를 사용하고 있다.

"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 " 목숨 바쳐 충성! 박정희 "

と血書した半紙を封入、書留で送付されて痛く係員を感激せしめた、同封の手紙には
라는 혈서를 쓴 종이와 함께 동봉된 등기로 도착해 담당자를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前略) 日系軍官募集要綱を拜讀しますと小生は凡ての條件に不適合の樣であります。甚だ僭濫にて恐懼の至と存じますけれども御無理を申しあげて是非國軍に御採用下さいませんてせうか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모든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스러운줄 아오나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만주군)에 채용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中略) 日本人として恥ちざるだけの精神と氣魄とを以て一死御奉公の堅い決心でこざいます。しっかりやります。命の続く限り忠誠を盡す覺悟でこざいます。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할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이 붇어있는한 충성을 다 바칠 각오입니다.

(中略) 一人前の滿洲國軍人として滿洲國のため延いては祖國のため何で一身の榮達を欲しませう、滅私奉公、犬馬の忠を盡す決心でこざいます
(중략) 한 사람의 만주국 군인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도 바라지 않고.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

일본어 설명 いちにんまえ(一人前)라는 표현은 제몫을 할 줄 아는 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後略) とペンで達筆に認めてあり同君の軍官志願の手紙はこれで二度目であるが軍官なるには軍籍のある者に限られてをり、軍官學校へ入れるにしても資格年齡十六歲以上十九歲であるため二十三歲では年が多過ぎるので同君には氣の毒ではあるが鄭重に謝絶することになつた=寫眞 朴君
(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고자 해도 자격 연령이 16살 이상 19살까지이기 때문에 23살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同君)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사진 박군.

(『滿洲新聞』1939.3.31. 7면) ; 1939년 3월 31일 < 만주신문 > 7면

※경상북도 문경시에는 박정희가 문경소학교 교사시절에 살았던 집을 청운각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존하고 있는데 박정희의 추종자들이 역사를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예이다.

박정희 일본 프로필
일본 백과사전 속 박정희

일본 육해군 총합사전 2판에 소개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력. 일본 이름이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로 기록돼 있다. 이 사전은 동경대학출판회가 2005년 8월15일 발간한 것이다.

이회창의 부친 이홍규는 '마루야마(丸山)'로 김대중은 '도요다 다이쥬(豊田大中)'로 김영삼은 '가네무라 코유(金村康右)'로 창씨개명을 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창씨개명이 시행되던 당시 김대중은 만15세, 김영삼은 만13세, 박정희는 만23세였다. 박정희는 당시 만주군관학교 생도로 본인 스스로 창씨개명을 했지만, 김대중·김영삼은 창씨개명 당시의 나이로 봐 자신들이 했다기 보다 일제의 강제에 의한 것으로 봐야 한다.

김대중의 창씨개명소식에 흥분해 앞뒤분간도 못하고 박정희의 친일행위를 덮고자 김대중을 끌어들이는 추종자들의 작태가 가증스럽다. 일왕에게 충성혈서를 쓰고 황국신민이 되고자 자진해서 창씨개명한 다카키 마사오와, 강제에 의한 창씨개명으로 친일파의 기준에 속하지 않는 대다수 국민들의 한 사람에 불과했던 겨우 15살의 어린 소년 김대중을 같이 엮을려는 게 말이 되는가.

박정희의 또다른 창씨명인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라는 이름은, 일본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다가 탈출해 6000리 대장정 끝에 한국 광복군에 합류한 진짜 광복군 장준하가 주장한 박정희의 또다른 창씨개명이며 박정희의 일본군 시절 동료들이 증언한 이름이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육사에 편입했을 때 다카기 마사오에서 완전히 일본 이름처럼 보이는 오카모토 미노루로 바꾸는데, 그 증거로 일본 백과 사전엔 박정희의 창씨명이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로 기록되어 있다. 출처: http://kimchangkyu.com/545 / 보림재박정희와 친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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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박정희 혈서'라고 검색하면 '박정희 혈서 조작' 또는 '박정희 혈서 날조' 라는 기사가 먼저 표시된다 (2014년). 즉 이 페이지에서 설명한 박정희의 혈서가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하여 거짓으로 조작되었다는 주장인데, 대표적인 인물로 지만원이라는 사람이 있다. 조작된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국민들을 그렇게 선동하고 싶은 것일까?

이에 민족문제연구소는 '박정희 혈서 조작설'을 유포한 강용석, 정미홍에 대해 고소했고 (2014.8.27). 박정희 혈서 조작설 유포자의 친필 사과문이 민족문제연구소에 전달되었고 (2015.1.13), 강용석 전 한나라당의원과 정미홍 전 KBS아나운서는 유죄판결 받았다 (2015.10.27). 박정희를 추종하는 자들의 실체가 이렇다. 거짓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한편 2008년 이명박 정부는 박정희가 5.16 군사반란을 일으킬 때 살던 신당동 집을 서울시문화재로 등록하였고 박근혜 정부는 2013년 3월 17일 박정희의 신당동 가옥을 개방하였다. 일본과 중국은 호시탐탐 조선반도(한국+북한)를 노리고 있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기념하고 있으니 과연 이런 민족에게 미래가 있겠는가...


2016년을 바라보는 지금도 인터넷상에는 박정희가 쓴 혈서는 조작이라고 거짓을 유포하는 글 들이 있다. 국정원 댓글부대가 썼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박정희가 일본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써가며 만주군에 지원한 것은 사실임이 드러났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는, 즉 진실을 모르면서 박정희 추종자들에게 맹목적으로 동조하는 사람이 있다. 참으로 바보같은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윤창중, 부정선거, 국정원,세월호, 정윤회, 십상시, 담배값인상, 국정교과서.... 반민족적이고 정통성없는 정부가 여전히 유지 되고 있다. (2015.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