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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가현의 축제 카라츠쿤치

현대문명이 발달해 서방 선진국들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으로 평가하는 일본. 그런 일본은 역설적으로 세계 제일의 잡신을 믿는 '신(神)의 나라'이기도 하다. 태풍이나 지진 등 자연재해가 많다보니 오만가지 잡신을 믿는다고 한다. 또 하나. 일본을 일컬어 흔히들 '축제의 나라'라고도 한다. 짧게는 몇십년부터 수백년된 축제까지 경향 각지에서 그 지방의 특색을 잘 표현한 축제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 축제가 생명력을 유지하는데는, 주민들의 참여열기가 매우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중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규슈(九州) 사가현 대표축제인 가라츠시의 '가라츠군치(唐津くんち)' 현장을 직접 찾아가 봤다.

카라츠쿤치
▲ 일본 가라츠군치 가장행렬에 앞서 오타비쇼에 14대 가마가 운집하고 있다.

사가현 대표축제 '가라츠군치'

"엔야~ 엔야(エンヤ)~" "요이사, 요이사(ヨイサ)~".
우리말로 하면 "영차, 영차"나 "으샤, 으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일종의 일본식 구령이다. 일체된 함성소리와 함께 무게 2~5톤에 이르는 갖가지 형상의 바퀴 달린 14대 대형가마(히키야마, 曳山)를 동네 청년들이 밀고 들어오면서 내는 구령소리다.

마을대표 히키야마를 갖가지 복장을 한 마을사람들이 밀고 올 때마다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구경꾼들로 도로가 마비될 정도다. 가마꾼들이 서로 겨루기를 하는 것도 아니어서, 한국사람들이 볼 때는 다소 '시시해' 보이기도 하련만, 참가자들은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고 즐기는 모습에서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곳 가라츠시에서는 매년 11월2일부터 4일까지 온시민이 혼연일체가 되는 '가라츠군치'가 열린다. '축제(마츠리)'라는 명칭을 쓰지 않고 군치(=쿤치,くんち)를 쓰는 점이 흥미롭다. 망향의 조선 도공들을 위로하고자 음력 9월이면 '큰 잔치' 판을 벌였다고 해서 '큰 잔치'란 발음이 변해 '군치'가 됐다는 연구논문도 발표되지만, 중국의 중양절에서 전래됐다는 견해가 아직은 다수설이다.

가라츠군치는 나가사키군치와 더불어 일본의 3대 군치로 불린다. 가라츠군치는 이곳 시민들에게는 가장 큰 축제다.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객지에 나가살던 출향인들이 대거 휴가를 내면서까지 고향을 찾고 상점 대부분도 문을 닫으며, 심지어 관공서도 필수인력만 남기고 축제에 참가할 정도다.

충남 당진은 일본 가라츠(唐津)?

부산에서 배편으로 3시간이면 도착하는 일본 규슈 사가현의 가라츠시. 가라츠시는 특이하게도 한자로 표기할 때 '당진(唐津,からつ)'이다. 충청도 당진은 지명 그대로 당나라와 해상무역이 빈번했던 곳이다. 이곳 일본 당진(가라츠시) 역시 고대부터 '바다를 건너가는데 아주 양호한 나루터'라는 뜻으로 당진이란 지명을 썼다. 이는 한반도와 중국을 가리킨 것.

또한 가라츠시의 독특한 미(美) 의식인 '와비 사비'가 임진왜란 때 끌려온 앞선 기술을 가진 조선 도공들이 접시와 병, 항아리 등을 생산해 오늘날 가라츠도자기(가라츠야키)로 유명해졌다.

일본 가라츠시 홈페이지에도 가라츠에 대해 조선침공의 거점항, 과거 역사적 사실에 대한 반성에 기초한 나고야성, 조선도공의 후예임을 숨기지 않고 있다.

여수에는 '진남관'이라고 있다. 진남(鎭南)은 '남쪽(왜)을 치라'는 뜻이다. 여수에서는 한때 일본인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며 '진남'이라는 명칭을 빼기도 했지만, 일본은 가라츠에 '진서정(鎭西町)'이라는 지명이름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엄연한 역사이기에.

가라츠시는 인구 13만명의 소도시다. 그러나 11월 가라츠군치 기간에는 각급 학교가 휴교까지 하며 30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이 기간 가라츠군치를 즐긴 데이비드씨(28)는 "일본의 축제를 보면 일체감이나 쏟는 정성 면에서 동양의 혼이 느껴지는 것 같다"며 "규슈 여행길에 가라츠군치를 보러 일부러 방문했다"고 말했다.

히키야마(曳山) 힘찬 행렬, 흥 돋는 볼거리

각 마을에서 독자적으로 제작, 보존하던 히키야마를 신사참배할 때 동행하던 행사가 가라츠군치까지 발전했다고 한다. 가라츠군치는 14대의 히키야마가 3기의 신가마를 경호하면서 서쪽의 해변 오타비쇼(御旅所, 제례 때 신여를 본전에서 옮겨 임시로 안치하는 곳)로 옮겨진다. 히키야마가 들어가고 나갈 때에는 모래사장에서 최고 높이 7m, 중량 2~5톤이나 되는 히키야마를 조종하는 300~400명의 히키야먀 참가자들의 구령 '엔야~' 모습이나 징,북, 피리의 흥겨운 장단에 맞춘 14대의 히키야마의 역동적인 모습이 축제 최대의 볼거리다. 이는 국가 중요민속무형문화제로 지정돼 있다.

축제에 사용되는 히키야마의 색채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제작한 것으로 일본 전통 종이를 200번 이상 덧붙여 옻칠을 해 만든 대형가마다. 옻칠과 금박으로 돼 있어 히키야마들이 '반짝반짝' 윤이 난다. 14대의 히키야마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가타나마치 마을의 히키야마 '적사자'가 이끈다. 이것은 181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200년 가까운 군치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사자와 용, 거북이와 돔, 봉황, 칠보환, 투구까지 마을별로 통일된 복장차림의 14대의 히키야마가 가장행렬하듯 가라츠 시내를 두루두루 행렬한다.

특히 가라츠 시민들은 제사상에 반드시 돔을 올리기 때문에 이 시기만 되면 돔 가격이 폭등한다. 하지만 으레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불만을 표출하는 시민이 없다. 또한 이 기간에는 집집마다 대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대접하는 풍습이 오랜 전통으로 남아있다. 술과 음식이 빠질 수 없는 축제다보니 거리를 활보하는 주취자도 보이고, 갖가지 요깃거리를 파는 노점상이 즐비하지만 큰 혼란은 없다.

민간 주도하는 축제, 유년기부터 참가

가라츠군치의 최대 매력은 남녀노소 구분할 것 없이 참여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기간 학교가 휴교하다보니 참석률이 높은 것도 있지만, 지역의 축제를 키워간다는 자부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 또한 초등생부터 장성해서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참가함으로써 매년 축제는 진화한다.

가라츠군치는 히키야마의 행렬이 주된 의식이지만, 어떠한 의식이나 부대행사 없이 단순하게 히키야마의 행렬만 이어짐에도 마을사람들이 즐거운 잔치판을 벌이는 것은 아무리 집단행동이 강한 일본이라고 해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그러나 이는 군치가 축제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신에게 제사를 모시는 '제(祭)'의 형식을 빌었기에 만사 제치고 군차에 참여하는 동력이 되고 있으며, 가라츠 시민들은 선인의 혼이 담긴 히키야마를 수리해가며 소중히 보존 중이다.

전남 여수에는 진남제라는 독특한 호국문화제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990년대 지자체 시행 이후 전국에 우후죽순 난립하는 축제에 치여 예전만큼의 명성은 아니지만, 진남제 정신을 이으려는 민·관 차원의 고민과 벤치마킹 노력은 역력하다.

11월 초 군치 때를 놓쳤다면 가라츠시에 보존된 박물관으로 향하면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가라츠시에는 '히키야마전시장'이 유료로 운영되는 까닭이다. 14대의 히키야마를 전시장에 보관하며 입장료를 받아 히키야마 보수비용이나 축제비용에 보탠다. 축제가 끝나면 대충 창고에 보관하는 우리나라와는 축제를 바라보는 인식이 확연히 다르다. 이런 가운데 특히 가라츠시는 백제 무령왕 후손임을 애써 숨기지 않은채 충남 공주를 비롯해 여수와 서귀포까지 우호도시 협약을 맺고 있다. 출처: 프라임경제 (2014.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