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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독교
일본에 기독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1549년, 카톨릭교파인 예수회의 프란시스 자비에르가 가고시마현에 도래한 것이 처음이다. 초기에는 지배계층 가운데 서양 문물에 관심을 가진 일부가 카톨릭 포교에 호의적이었지만, 17세기 초 전성기 때는 신자 수가 75만명에 달했다. 그 수는 오늘날 일본 전체의 그리스도교파의 산자 수에 육박하는 정도로, 당시의 인구가 현재의 6분의 1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 수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후 에도막부는 그리스도교의 종교사상이 신분질서와 봉건체제 유지에 해롭다고 판단하여 차츰 억압하고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신자들은 박해를 받았고, 1613년에는 외국인 선교사가 국외로 추방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카톨릭이 금지된 이후에도 일부 신자들은 비밀리에 신앙을 지켰지만, 발각되어 사형을 당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19세기 후반에 구미와 국교를 수립한 이후, 일본에는 또 다시 그리스도교 포교활동이 활발해졌다. 1859년 이후에는 프로테스탄트 선교회가 미국에서 파견되었고 카톨릭 러시아도 포교활동을 시작했다. 이들 외국인 선교사들은 일본에서 사회사업이나 교육사업에도 힘써 일본에 구미문화를 도입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일본의 근대화는 거의 미국문화를 의미하지만, 구미문화의 중심을 이룬 그리스도교적 생활방식과 도덕규범 등도 일본에 전해졌다. 현재의 일부일처제도가 그 한 예이다. 현재 일본의 그리스도교 신자는 프로테스탄트 43만 명, 카톨릭 95만 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기독교 보급이 저조한 이유
일본의 기독교는 4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나 한국과는 달리 일본 사회의 깊숙한 곳까지는 침투하지 못했다. 한국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으로서는 의외의 상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써는 먼저 에도막부의 쇄국정책에 의한 기독교 탄압 정책을 들 수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전국을 통일한 후, 계속해서 세력을 확장해가는 기독교 세력에 위기감을 느껴 그리스도교금제(キリスト教禁制)를 내렸다. 이와 관련해 큐슈의 시마바라(島原)에서는 영주의 학정과 기독교에 대한 탄압에 대항해 시마바라의 난(島原の乱)이 일어났다. 4개월간의 반란은 막부군에 의해 진압되었고, 이후 기독교는 혹독한 탄압을 받게 되어 약 250년동안 사회적으로 금지되었다. 1640년에는 종문인별장(宗門人別帳)이라는 제도를 통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일본인을 불교의 사원에 소속하게 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기독교인을 색출하는 한 방법으로 후미에 제도(踏み絵制度)가 행해졌다. 이러한 박해를 통해 20만 명이 넘는 기독교 신자들이 목숨을 잃었고, 박해를 피한 소수의 신자들은 숨은신자(隠れキリスチャン)가 되어 신분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미국의 페리 제독에 의해 문호가 개방된 후, 1859년에 미국의 개혁파 장로교회의 선교사들에 의해 개신교의 선교역사가 시작되어 성공회, 오순절교회, 루터교 등이 차례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후 30여 개의 교단이 생기는 등 메이지유신을 전후해 일본의 기독교 세력은 다시금 활기를 띠게 되었으나 1941년 태평양전쟁 개전 이후 쇼와천황은 난립해 있던 교단을 하나로 통합해 일본 기독교단을 만들었다. 일본 기독교단은 천황숭배와 신사참배를 앞장 서서 했으며, 기독교는 어용종교화되어 침략전쟁을 위해 기도와 헌금운동을 벌였다. 2차세계대전이 종전된 후에 많은 교단이 일본 기독교단으로부터 탈퇴해 새롭게 조직을 정비하였고, 또 새로운 선교단체들이 많이 들어와 현재의 130여 개의 개신교 교단을 이루었다.
이러한 오랜 기간에 걸친 기독교 탄압에 의해 일반인들의 머리 속에는 기독교를 기피하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또한 에도시대의 현세 중시적인 삶의 방식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선과 악, 천당과 지옥이라는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보다는 돈과 쾌락, 어떠한 정신적 구속으로부터도 자유로운 현실의 삶을 향유하길 원했던 에도시대의 현세 긍정적인 쵸닌문화(町人文化)는 스스로를 구속하는 기독교의 계율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했다.
출처: 사진과 함께 읽는 일본,일본인,일본문화 (54쪽)
반론
종교는 인간이 믿는 것이므로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람들의 삶이 어려우면 종교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한국 백성들은 구한말 몰락해 가는 조선왕조의 부정부패, 서구 열강과 외세의 침략, 일본의 식민지배, 남북간의 전쟁 등으로 적어도 100년이상 매우 힘든 삶을 살아야했다. 그때까지 사회를 지탱했던 유교는 더이상 신뢰받을 수 없게 되었다. 자연히 한국사람들은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를 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민족종교는 일본에 의하여 철저히 탄압을 받았다. 그래서 기독교가 한국에서 세를 불릴 수 있었다.
반면에 일본은 전쟁에서 패망하기전까지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굳이 외래종교인 기독교에 의지할 필요가 없었다. 2차세계대전 말기와 패망후 잠깐 동안 어려웠을 뿐이다. 더우기 일본은 전쟁을 수행하기위해서 천황을 신격화했으며 그러기 위해서 민종종교인 신도를 국교로 삼았다. 또한 전쟁기간 동안 기독교는 적국인 미국의 종교였다. 전쟁에 패한 후에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군정하에 있을 때에도 미국은 여전히 적국이며 기독교는 적국의 종교다. 때문에 정상적인 인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적국의 종교를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정치인이나 민족지도자들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떠한가? 먹고 살 만한 나라일수록 종교에대한 관심이 없다. 굳이 종교를 믿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람들의 지식수준이 높아질수록 종교는 비판 받는다. 기독교 특히 개신교가 한국에서 비판 받는 이유를 생각하면 납득이 될것이다. 불교에서 석가모니는 신이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예수는 신이다. 불교는 모든 사람이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다(구원 받는다). 하지만 기독교는 믿는자는 구원 받고 믿지 않는자는 지옥에 간다는 논리다. 일본의 신도는 죽으면 모든 사람이 신이 된다는 생각이다. 이 세가지 종교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종교는 기독교이며 비합리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일본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기독교는 극단적이고 미개한 종교일 수 밖에 없으며 정당성 또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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