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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 관광정보
- 부여여행기: 정림사지, 부여박물관, 궁남지, 백제관, 백제왕릉, 부소산성, 무량사 등 여행.
- 능산리 고분(백제왕릉원): 의자왕 가묘.
- 정림사지 5층석탑: 평제탑.정림사지 박물관.
- 궁남지: 서동과 선화공주 이야기.
- 국립부여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
- 무량사: 매월당 김시습 영정. 보물 356호 무량사 극락전.
- 부여 연입밥
- 부여 음식점 맛집
- 부여 숙박정보: 호텔,유스호스텔,한옥,리조트,모텔...
- 부여시외버스터미널
- 외산시외버스터미널
- 향토사학자 이석호(1927~?): 백제사연구가, 부여문화원장.
부여 관심 여행정보
- 백제문화제: 백제 제26대 성왕이 서기 538년 봄 백제중흥의 뜻을 펼치기 위해 공주 웅진성에서 부여 사비성으로 천도하는 과정과 모습을 주민, 학생 등 2천여명이 재현하는 사비성 천도행렬과 천도 사실을 역대 왕과 신께 알리는 제례의식인 정도고유제 등 부여에서만 볼 수 있는 축제. 개최시기: 매년 9월~10월. 장소: 구드래공원 일대.
- 부여서동연꽃축제: 궁남지일원 38만여 제곱미터 면적에 오가하스연, 가시연, 빅토리아연, 홍련, 백련, 황금련, 수련, 왜개연 등 50여종의 연꽃을 볼 수 있다. 개최시기: 매년 7월. 장소: 서동공원. 041-830-2330.
- 백제문화단지: 백제왕궁인 사비궁과 대표적 사찰인 능사, 계층별 주거문화를 보여주는 생활문화마을, 위례성, 묘제 등을 볼 수 있다. 전화: 041-635-7741.
- 서동요테마파크: 드라마 '서동요'와 '계백'의 촬영지. 전화: 041-830-2862.
- 만수산 자연휴양림: 아름다운 소나무숲과 계곡 사이에 산막과 복합시설, 물놀이장 등 편의시설이 갖춰진 자연휴양림이다. 45일 전부터 인터넷 예약 가능. 전화: 041-830-2348.
- 신동엽 생가 문학관: 신동엽(1930~1969) 시인이 소년기부터 청년기를 보낸 곳이다. 주소: 부여군 부여읍 신동엽길 21. 전화: 041-830-2873.
부여 가는 방법
- 철도편
- 서울→논산→시내,외버스→부여.
- 광주→논산→시내,외버스→부여.
- 부산→대전→시내,외버스→부여.
- 서울→경부고속도로→천안JCT→천안논산간 고속도로→서공주JCT→공주서천간 고속도로→부여IC.
- 서울→서해안 고속도로→대전당진간 고속도로→공주서천간 고속도로→부여IC.
- 대전→대전당진간 고속도로→서공주JCT→공주서천간 고속도로→부여IC.
- 부산→경부고속도로→비룡IC→대전남부순환 고속도로→서대전IC→논산→부여.
- 광주→호남고속도로→논산JC→천안논산간 고속도로→서논산IC→부여.
- 스마트폰 당구교재 당구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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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용차편
부여의 역사
부여는 백제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명칭이 바뀌지 않은 오랜 군으로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라의 수도 계림은 신라가 멸망한 후 경주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지만 부여의 명칭은 백제시대 이래 그대로 지금까지 군의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부여라는 나라는 우리 나라에서 고조선 다음으로 가장 오래 전에 세워져 4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나라이다. 결국 고구려에 통합되어 그 역사를 잃어버린 나라의 하나이다. 이 부여에서 금와왕이 동쪽으로 옮겨와 지금 길림성 연길 지방에 동부여가 되었고, 그 일부가 다시 내려와 졸본성에서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그리고 그 지배층 일부가 다시 한강 남쪽으로 내려와 백제를 건국하였고, 백제는 한강유역의 위례성에서 고구려의 팽창정책에 밀려 공주로 천도하였다. 무령왕이 중흥을 이룩하기 위하여 천도의 계획을 하였고, 그 아들 성왕대에 수도를 부여로 옮겼다.
부여는 공주와 함께 백제문화의 흔적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좋은 의미에서 부여는 완성된 백제의 문화모습을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백제 패망의 아픔도 고스란히 전해 준다. 부여에는 왕궁지와 수많은 불교유적들, 왕릉유적, 그리고 부소산과 궁남지 등 발전했던 백제문화가 밀집되어 있다. 그리하여 부여시대 백제로부터 문화의 영향을 짙게 받았던 일본인 관광객들이 자기들의 문화 원류를 보기 위해 줄을 이어 찾는다.
공주로 천도한 뒤 계속 불안했던 백제왕실은 무령왕과 성왕대에 이르러 어느 정도 원상을 회복, 보다 강성한 왕국 건설의 웅지를 가지고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천도하였다. 부여로 천도한 백제는 국호를 남부여로 고치고, 호남평야지대의 경제기반과 진취적인 대외 활동을 통해 이 같은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다.
그리하여 백제역사상 부여시대(538~660년) 123년은 백제문화의 최전성기를 구가하였을 뿐아니라 삼국문화중 최고의 예술혼을 피우게 되었던 곳이다. 또한, 일본고대문화 형성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곳으로 이곳 부여에서는 백제의 역사문화를 찾기 어려워도 일본 지방에서 백제의 아름다운 문화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대외 영향력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