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천황제와 일본인의 왜곡된 역사관

천황제(天皇制, てんのうせい)가 일본인의 뒤틀린 역사인식을 초래한다 

“천황(天皇)제’는 ‘만세일계(萬世一系)’라는 학문적인 근거가 없는 신화가 포함된 제도입니다. 역사 인식 차원에서도, 민주주의의 원칙인 신분제의 폐지라는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는 제도입니다.”

일본 진보 진영의 행동파 학자인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62) 도쿄대 대학원(철학) 교수는 지난 22일 도쿄(東京) 메구로(目黑)의 도쿄대 고마바(駒場) 캠퍼스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천황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천황(일왕)의 전쟁 책임에 대한 지적은 일본 내에서 터부시되고 있지만, 식민지 지배와 강제 동원 등이 천황 직속이었던 조선총독을 통해 행해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새 연호를 놓고 일본사회가 축제 분위기를 보이는 데 대해 “천황에 의해 시간이 지배되는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현대사상, 정치철학 등을 탐구한 다카하시 교수는 평화주의를 연구해 온 일본의 대표적인 학자 중 한명이다. 일본 내 역사 수정주의·전후 책임론 논쟁에서 진보 논객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후 책임론'(1999년), ‘역사/수정주의'(2001년), ‘국가와 희생'(2005년), ‘야스쿠니 문제'(2005년), ‘국가와 희생'(2008년), ‘후쿠시마 이후의 삶'(2013년),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2013년) 등의 저서가 있으며, 이들은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됐다.

— 새 일왕의 즉위를 앞두고 일본 사회가 들떠있다.

▲ 천황제는 ‘만세일계'(일본의 황통[皇統·천황의 통치]은 영원히 같은 혈통이 계승한다)라는, 학문적으로 뒷받침이 없는 일종의 신화가 포함돼 있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후 ‘대일본제국헌법’으로 천황은 통치권을 총괄하고 국가의 주권자가 되면서 신성시됐다.

‘천황’은 국가의 주권자이며 원수였고 황군이라 불린 일본군의 ‘톱(top)’이었으니 일본군이 한 행동은 천황의 책임이었지만 결국 천황제를 폐지하기 보다는 이용하기로 했다. 전쟁 후 천황의 전쟁책임론이 부각됐지만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작아져 갔다.

— 천황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 크게 두가지 이유에서 ‘천황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역사인식의 문제다. 아키히토(明仁) 천황이 ‘리버럴(liberal·진보적)’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쇼와(昭和)천황의 전쟁 책임을 인정하는 발언은 결국 할 수 없었다. 일본 사회의 뒤틀린 역사 인식이 천황제에 남아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의 원리인 신분제의 철폐 차원이다. 천황제에는 황족(皇族)의 인권을 제한한다는 의미도 있다.

— 일본 사회에서 천황제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은 크지 않다. 이유는 무엇일까

▲ 아키히토(明仁) 천황은 재해가 발생하면 피해지역에 가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전몰자를 위령하는 등 여러 활동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친근감을 줬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리버럴계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가 됐다. 이를 통해 패전 후 존재했던 천황의 전쟁 책임론이나, 천황제 폐지론은 일본 사회의 중심에서 배제되어 소수화됐다.

천황제를 역사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지적인 노력, 즉 교육과 공부가 필요한데, 일본의 학교에서는 그런 비판적인 시각을 가르치지 않고 있고, 일본 사회에서는 그런 인식을 공유할 장소도 마련돼 있지 않다.

— 나루히토 왕세자가 일왕이 된 뒤에도 현재의 일왕처럼 전몰자 위령 등의 활동을 계속 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 나루히토 황태자(다음 일왕)는 자신의 부친인 현재의 천황으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아키히토 천황은 자신이 ‘상징 천황’의 역할을 해 왔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런 뜻은 당연히 황태자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새 천황은 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키히토 천황과 같은 생각을 가졌을지는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새 천황이 적극적으로 발언을 한다면 이는 헌법 위반이 된다는 헌법상의 논의도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발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연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 연호가 바뀌는 것에 대해 마치 무슨 축제처럼 소동이 일어나고 있다. 연호에 대해 무감각하게 마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 연호가 법제화될 때에는 반대 의견이 제기됐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는 그런 인식이 사라진 것 같다. 언론 역시 분위기를 띄우기에 바쁠 뿐 문제점을 지적하는 경우는 드물다.

연호는 원래 중국 황실이 공간 뿐 아니라 시간도 지배하겠다는 생각에서 만든 것이다. 연호에 기뻐하는 것은 천황에 의해 시간이 지배되는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스스로가 주인공이라는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 새 연호 ‘레이와(令和)’에 대해 평가해달라

▲ 정부가 일본적인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원래 원호는 중국의 제도를 따라 한 것이다. 아베 정권이 새 연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례적으로 총리가 직접 나와 연호에 대해 설명하기까지 했고, 그 결과 내각 지지율이 올라가기도 했다.

개헌 추진에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문제다. ‘새롭다’는 분위기를 띄워서 새로운 시대에 들어왔으니 헌법도 새롭게 하자는 식으로 환경을 만들고 있다.

— 레이와 시대에 한일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나

▲ 우선, 아베 정권과 같은 역사인식이 계속되는 한, 한일 관계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특히 중요한 것은 남북 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일 텐데, 아베 정권은 남북 관계도, 북미 관계도 잘 되기를 바라지 않고 있다.

일본은 한반도의 평화, 전쟁종결과 비핵화를 지지하고 협력해야 한다. 한반도의 긴장 상황은 정부가 군비 확장을 꾀하는 데 좋은 핑계가 되니 일본의 평화라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취재 보조 : 데라사키 유카 통신원) (출처: 연합뉴스 2019.4.29)

관련글: 일본의 천황제 (뚱딴지 일본탐방, 김용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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