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천황제

천황제 (天皇制, てんのうせい)

일본은 수상을 우두머리로 하는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그 위에 천황이 신처럼 군림한다. 아직도 왕이 남아 있는 나라로는 영국이나 스페인 등이 있지만, 그 나라들은 왕족들의 권위가 예전보다 떨어진 제 반하여, 일본의 천황은 아직도 옛 전통을 지키고 있다.

실제로 권력은 없지만 천황은 변함없이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일본 헌법 제1조에 천황은 일본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고 씌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역사책에 의하면 최초의 천황은 진무 천호아으로, 기원전 660년부터 기원전 585년까지 75년 간 군림했다고 한다. 그러나 천황의 존재를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설명 할 수 있는 것은 4~5세기 이후부터다. 그리고 법률제도를 도입하여 천황 스스로 정치를 하게 되었던 것은 7세기부터지만, 실제로 정치를 한 기간은 짧았다. 헤이안 시대까지 천황의 통치 권한을 위이받은 귀족이나 무사가 정치를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868년, 메이지 유신에 의해 천황는 입헌군주제 형태의 통치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천황을 인간이 아닌 ‘살아있는 신’으로 신격화시켜 군국주의 통치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일본의 천황은 유럽의 왕들처럼 강력한 왕권을 가져 본 적도 없으며, 가지려고 애 쓴 적도 없다. 오히려 가능하면 밖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신비로운 존재로만 머물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자 아무런 미련없이 깨끗하게 권력을 내각 총리에게 건네 주면서 ‘천황의 존재는 신성하고도 범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선언한 뒤 국민들이 잘 볼 수 없는 자리에 위엄을 갖추고 숨어 버린 것처럼 말이다.

일본 사람들에게 힘센 것이나 두려운 것은 모두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해 무서워하거나 존경하는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국민은 신이고, 천황이고, 영주이고 간에 상관없이 오직 위만 무서워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천황은 좀처럼 국민들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되는 신비스러운 존재여야한다.

1936년, 일본의 육군 장교가 쿠데타를 시도하여 장관을 습격, 암살한 일이 있었다. 그 때 천황이 ‘군인의 정치 참여는 절대로 용서 못 한다.’라는 말을 한 미디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천황의 이 한 마디로 쿠데타에 가담한 군인들은 순순히 항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킨 것도 천황이었다.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어 지칠대로 지친 일본의 문과 지도자들은 은근히 항복을 주장했으나, 군부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최후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천황의 신비한 힘뿐이었다. 끝까지 싸우겠다고 미쳐 날뛰던 일본 군대도 천황의 신비성 때문에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옳건 그르건 간에 일본인이 하나의 의견으로 통일되어 있을 때는 아무리 천황이라도 결코 그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의 마음이 미묘하게 갈라져 있을 때, 예를 들면 반란이나 혁ㅁ병이 일어났을 때처럼 결정적인 시기에는 천황의 말 한 마디가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신비스러운 것은 귀한 것이라야 한다. 천황이 자주 간섭을 햇더라면 그런 현상는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 천황는 신비로움을 간직하기 위해 웬만해서는 나서지 않았다. 일본의 역사를 살펴보면 천황이 권력을 가졌던 때보다 가지지 않았던 때가 훨씬 길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에게 천황의 존재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항상 위를 무서워하고 존경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무조건 믿고 따를 대상이 필요한 일본 국민들에게 결정적인 시기에 단호한 결정을 내려 주고 행동을 지시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천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조건 믿고 따를 대상, 즉 천황이 없으면 슬기롭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 내지 못하는 것이 일본인들의 속성이다. (출처: 뚱딴지 일본탐방, 김용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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